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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jjj2027푸른소나무 2016. 8. 15. 11:15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법경대사 자등탑비. 보물 제17호. 높이 3.15 m, 폭 1.45 m, 두께 31 cm. 943년(고려 태조 26) 최언호(崔彦鎬)가 비문을 짓고 구족달(具足達)이 글씨를 썼으며 승려 4명이 각자(刻宇)하였다. 귀부(龜趺)·이수(首)는 화강석으로 만들었다. 법경은 신라 말·고려 초의 명승으로 비문에 의하면 이름 현휘(玄暉), 속성은 이씨(李氏)이다. 879년(신라 헌강왕 5) 출생, 영각산사(靈覺山寺)의 심광(深光)에게 사사하였다. 906년(효공왕 10) 당나라에 유학하고 924년(경애왕 1) 귀국하여 국사(國師)로 존경받았다. 정토사 주지가 되기를 청하여 대중교화에 힘쓰다가 941년(태조 24)에 좌멸(坐滅)하였다.

         내가 둘러본 정토사 법경대사 자등탑비

가끔씩 아니~~~

1년에 두세번 정도 자동차를 몰고 가끔.,..이곳을 지나간다.

어릴적 내가 자라고 국민학교를 다녓던곳...

원래 법경대사 탑비는 하천리 하실입구에 자리잡고 있었다.

국민학교 다닐때 하도 신기하여 보고 또 본....

 

                                    

학교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이곳에와서 놀던 45년전 추억....

내고향 열두개천안을 대표하는 국보급문화재

1000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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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대사 자등탑비에서 

법경대사 자등탑비에서

 

 법경대사 자등탑비에서

 법경대사 자등탑비에서


 

 

법경대사는 이런 예언을 했다한다.

학이 정이품송을 품고 물이 정이품송을 품으니 ....

하여 법경대사의 예언대로 충주댐수몰로 인해 거대한 호수가 되어버린

내고향 개천안....

이런 위대한 문화유산이 자랑스럽슴니다.

 

         보물 17호(정토사 법경대사 자등탑비)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정토사 법경대사 비 잘 조성되어 많은 관광객이 찿고있다.

탑비의 정면에는 옛 절터였던 기초석이 남아 있었으며, 탑비는 굉장히 크고, 비문은 천년이 지났음에도 선명하고 보입니다. 귀부와 이수의 조각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호각은 사방을 모두 막아 놓아서 보기도 어렵고,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만, 이 곳의 보호각은 답사자들이 잘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토사 터에 전하고 있는 비(碑)로, 신라말·고려초의 승려 법경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토사는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법경대사가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태조 24년(941)에 입적하자, 그의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비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비받침에 새겨진 거북조각이나 머릿돌의 용조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 앞면의 중앙에는 ‘법경대사’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비의 몸돌에는 대사의 행적이 자세히 새겨져 있다.

법경대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9)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교의 법을 배워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924년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하여 정토사의 주지로 임명하였고, 고려 태조 24년(941)에 63세로 입적하자 태조는 시호를 ‘법경’, 탑이름을 ‘자등’이라 내렸다.

태조 26년(943)에 그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고,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 최언위가 지었으며, 유명한 서예가였던 구족달(仇足達)이 글씨를 썼다. 함께 서 있었을 사리탑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이곳에 남아 있지 않다.

▲ 탑비의 후면 전경

 

열두 개천안을 대표하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정토사법경대사 문화재가 내고향에 있다는게

세삼 자랑스럽다.

 

 

 

 

 

 

 

 


비문에 1000년이 넘었는데 선명한 글씨체는 놀라움 따름...

그러나ㅠㅠㅠ

6.25한국전쟁때 총탄자국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동족상전의 비극은 오늘날까지.계속되고있다.

안타까운 현실....하루빨라 남북이 통일되어

옛 고구려~조선땅인 간도 땅을 되찿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