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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련

국제우주정거장 ISS

jjj2027푸른소나무 2012. 6. 2. 20:04

 

국제우주정거장

 

인류는 오래전부터 광활한 우주에 대해 꿈꿔왔다. 그동안 우주탐사, 우주여행 등에 대한 많은 개념 제안과 연구가 있었지만,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우주개발의 본격적인 서막이 올랐다. 1957년 10월 구소련이 ‘스푸트니크’라는 세계 최초의 인공위

성을 쏘아 올린 것이다. 이후 구소련과 미국이 로켓과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며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렇듯 당시의

우주 개발은 로켓이나 인공위성에 집중돼 있었다.
 
한편, 구소련의 과학자 치올콥스키는 우주에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설치하고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우주정거장의 온실에서 식물을 재배하고 거대한 거울을 이용해 통신을 할 수 있다고 했으며 거대한 바퀴 형상의 우주정거

장을 회전시켜 인공 중력을 만드는 방법도 소개했다. 몽상가의 꿈으로만 여겼던 그의 제안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현실

이 되고 있다. 달 착륙에 성공한 세계 최초의 유인우주선인 아폴로 11호 때만 해도 인간이 우주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4~5일이 전부였는데, 이제 인류는 우주정거장에서 1년 365일 생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제우주정거장의 건설은 인류의 우주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써 중요한 관문이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의 탄생


국제우주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 ISS)의 건설은 인류 우주개발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이다. 국제

우주정거장은 축구장만한 크기의 구조물을 고도 300~400km의 지구궤도에 조립한 것으로, 조립을 위해 그동안 우주왕

복선 소유스, 프로그레스와 같은 유인 및 무인화물선 등이 수십 차례에 걸쳐 우주궤도를 왕복했다.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사업은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협력사업 가운데 가장 큰 사업이다. 이 사업은 미국이 주축을 이루고 있

으며 유럽, 러시아, 일본, 캐나다 등 1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처음으로 “프리

덤 우주정거장”의 건설 계획을 입안했다. 그러나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 사고 및 천문학적인 비용 조달 등의

문제로 계속 지연됐다. 결국, 1990년대 초반, 이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이후 미국은 1993년 러시아, 유럽, 일본, 캐나다 등 15개국을 끌어들여 “알파 우주정거장”의 구축을 제안했으나 논란이

많아 그해 바로 취소됐다. 하지만, 곧이어(1993년) 미국이 “프리덤 우주정거장”, 러시아의 “미르 2 우주정거장”, 유럽우주

기구의 “콜럼버스 연구실 모듈” 등의 우주정거장 계획을 하나로 통합해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이 시작됐다.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의 본격적인 대장정은 1998년 11월, 러시아가 우주정거장 전체 구조물의 한 부분인 자랴(자르야, Zarya) 모듈을 발사

하며 시작됐다. 이후, 즈베즈다 모듈, 유니티 모듈, 태양전지판, 데스티니 모듈, 로봇 팔 등이 발사돼 착착 조립되기 시작

한다.

 

 

1998년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설치된 러시아의 자랴(Zarya) 모듈(왼쪽). 2001년 설치된 로봇 팔 중 팔에 해당하는

캐나담2 (Canadarm2)(오른쪽).

 

 

 

하지만, 거대 국제협력 개발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2003년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던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폭발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사고로 2006년 9월까지 모든 우주왕복선은 지상에 묶여 있었다. 국제우주정거장의 조립

을 위해 우주인과 화물을 싣고 국제우주정거장을 왕복하는 우주왕복선의 발이 묶이면서 결국 국제우주정거장의 조립도

중단됐다. 이후 소요 재원 문제와 기존에 조립된 모듈의 수명 문제 등으로 일부 계획이 축소돼, 기존의 3분의 2 정도로 크기

를 줄였으며, 완공도 2011년 말로 지연됐다.  현재 조립 중인 국제우주정거장은 고도 약 350km 위에 떠 있으며 조건에 따라

지구 상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비행속도는 시속 2만 7,740km(초속 7.7km)이며, 하루에 지구를 약 15.78회 공전한다.

국제우주정거장이 완공되면 공기항력에 의한 고도낙하를 줄이기 위해 400km의 고도로 올려지며 본격적인 임무수행에

들어간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하는 일.

 

 

 

하지만, 국제우주정거장이 완공되는 2011년 이후에는 미국은 더 이상 운용할 수 있는 유인우주선이 없다. 우주왕복선인 아틀

란티스호, 디스커버리호, 인데버호는 모두 은퇴를 예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수령이 25년 정도 된

이들의 안전성을 고려해 폐기를 결정했다. 미 항공우주국은 그동안 콘스텔레이션 프로그램으로 후속 유인우주선과 로켓을

개발해 왔지만,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들 로켓 개발을 민간에 넘겨주기로 해 개발기간이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11년 국제우주정거장이 완성되어도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러시아의 소유스 유인우주선과 러시아, 유럽, 일본 등의 무인

화물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제우주정거장이 우주로 간 까닭은?


거대 구조물인 국제우주정거장은 왜 우주에 만들까? 우주정거장은 인간이 우주에서 장기체류하기 위한, 즉 더 멀리 있는

우주로 나가기 위한 연구를 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한다.

 

이곳은 다양한 우주실험을 위한 독보적인 환경을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중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상태에서 강도는

높으면서 무게는 가벼운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고 효능이 높은 고순도 의약품을 제조하는데 필수적인 공간이 된다. 새로운

우주기술을 개발하고 무중력 상태에서의 물리학과 생명과학을 연구하며 향후 장기간의 우주탐사와 우주여행을 대비해

우주환경에서의 인체 변화 연구도 시행한다. 물론 지구 상에서도 무중력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으나, 무중력을 유지

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 효용성이 떨어지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아예 무중력 공간인 우주에 무중력 실험실을 만드는

방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우주의 신비를 푸는 우주과학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반물질을 연구하고 우주에서 날아오는

각종 신비한 전파를 분석하는 일 등이 그렇다. 향후, 우주탐사선이 머물다 갈 임시 정거장으로, 추진연료 충전을 위한 정거

장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인류에게 지구의 한계를 벗어나는 발판을 제공한다는 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생활하는 우주인.

 

 

 

국제우주정거장의 문제점


국제우주정거장은 여러 국가의 모듈을 조립해 제작되다 보니 소유권문제가 복잡해, 이용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기곤 한다. 러시아에서 제작한 예비용 이산화탄소 제거기를 국제우주정거장에 가져갔다가 출입문 크기와 맞지 않아 9일

간 일일이 분해해서 들어간 일화도 있다. 즈베즈다 모듈과 다목적 실험실 모듈은 러시아 독점 소유이므로 러시아와 개별

계약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고, 자랴 모듈은 러시아가 만들었지만, 미국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데스티니도 미국이

독점적 소유권을 가진다. 나머지 모듈과 태양광 발전기, 로봇팔 등은 국가별로 일정한 사용시간이 할당돼 있다.

 
또한, 국제우주정거장의 건설과 운영에 장밋빛 미래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효용성의 문제는 근래에 이슈가 되었다.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당시 최초 계획은 완공 후 20년간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건설이 지연되면서 이미 우주에 올려 조립된

모듈들은 노화되고 있다. 장기간의 임무수명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부품이나 모듈의 교체가 필요하다. 결국, 최근 오바마 행

정부에서 임무 수행의 효용성을 고려해 2015년까지로 잡았던 임무 수명 목표를 수정, 2020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임무 연장을 위해서는 수백억 달러의 예산이 추가로 요구된다. 1984년 우주정거장을 계획할 때 예상한 건설비용이 80억

달러였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이들 비용의 3분의 2 이상을 미국이 지출해야 할 판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국제우주정거장은 미국 시민의 세금만 잡아먹는 우주 블랙홀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도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성 문제도 여전하다. 2007년 6월 국제 우주정거장이 운석에 맞아 구멍 뚫린 것이 발견됐다. 러시아 우주인들이 우주

유영을 하던 중 한 모듈의 펌프 부분에 총탄 크기의 구멍이 뚫린 것을 확인한 것이다. 다행히 모듈 자체가 관통된 것은 아니며

러시아와 미국 우주인 3명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운석이나 우주파편 등과의 충돌 가능성은 국제우주정거장과

우주인들에게 큰 위험 요소로 상존한다. 2009년 3월에는 우주파편이 국제우주정거장에 접근하면서 승무원들이 파편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소유스 캡슐로 긴급 대피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 항공우주국는 지름 0.84cm 크기의 파편이 국제우주

정거장의 궤도로 접근함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 승무원 3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국제우주정거장의 승무원들은 화재나

화학물질 유출, 파편과의 충돌, 응급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유스 캡슐로 대피하도록 돼 있다.

 

 
국제우주정거장, 우주 진출을 위한 교두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우주정거장의 건설은 인류의 우주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가치가 있다. 국제우주정거장 실험실은

지구의 어떤 무중력실험실보다도 완벽하고 장기적인 우주환경을 제공하며,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많은 다양한 분야의 

중대한 우주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인류에게 우주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사업에 우리나라가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우주정거장 활용에도

우리의 지분이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미 항공우주국와

협의했으나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현재는 미국, 유럽이나 일본 등의 모듈에서 무중력을 이용한 과학기술실험

연구를 직간접적으로 수행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우주정거장의 종류

우주에 건설하는 최초의 구조물이 국제우주정거장은 아니다. 임무 목적과 형상은 다르지만 지난 1970년 이후 미국과 러시아

는 경쟁적으로 우주정거장 개념의 구조물을 우주에 건설했었다.

 

살류트(Salyut)
살류트는 러시아에서 발사한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달 착륙에 성공한 이후, 러시아는 달 탐사와는

다른 분야인 우주정거장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불꽃놀이’란 뜻의 살류트 우주정거장은 미르와 국제우주정거장의

모체라 할 수 있다. 살류트는 1971년부터 1982년까지, 11년 동안 1호부터 7호까지 발사됐으며, 1991년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까지 현재 사용되는 다양한 우주정거장 기술들을 습득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스카이랩(skylab)
스카이랩은 새턴 V 로켓 3단의 내부에 거주 공간을 만들어서 지구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으로 개조한 것으로 1973년

5월, 35km의 고도에 첫 발사 됐다.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으로 인간이 체류한 시간으로 본다면 세계 2위를 차지

한다. 1973~1974년에 걸쳐 3회 동안 9명의 우주 비행사가 총 171일 13시간에 걸쳐서 우주에 체류했으며, 1973~1979년까지

지구 궤도를 2,000회 이상 주회한 기록을 갖고 있다. 지구·태양의 관측, 무중력 공간에서의 생리 현상의 연구, 무중력에서의

반도체·금속 결정의 생성, 생물·미생물의 활동 관찰 등 다양한 과학적 실험들이 행해졌다. 또한, 인간이 장기간 무중력에서

생활하는 것에 관한 조사도 많이 수행됐다.

 

 

스카이랩(왼쪽)과 미르.(오른쪽)

 

 

 

미르(Mir) 
미르는 러시아의 살류트 우주정거장 시리즈를 기초로 하고 있다. 구소련이 해체된 후, 국제적인 협력이 가능해지자 우주왕복

선-미르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서방의 우주인들이 미르 우주정거장에 장기간 체류하고 방문할 수 있게

 됐다. 미르의 건설 목적은 우주인이 거주 가능한 거대한 우주과학 실험실의 마련이었다. 미르와 우주왕복선이 서로 결합해

일시적으로 거주공간과 작업공간이 확대됐는데, 이는 우주정거장 역사상 세계 최대의 무게(205톤)와 넓이를 기록한 것이

었다. 미르는 2001년 3월 지구 대기권에 재진입해 피지의 나디(Nadi) 근처에 추락, 남태평양 속으로 가라앉으며 15년의

임무를 마쳤다.

 

 

 

  1. 치올콥스키

    콘스탄틴 치올콥스키(Konstantin Eduardovich Tsiolkovskii, 1857.9.17~1935.9.19), 구소련의 물리학자이자 우주과학자로 우주비행이론과 로켓과학, 인공위성 연구 등 인류의 우주개발 역사에 있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다. 우주비행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지구는 인류의 요람(Cradle)이다. 하지만, 인류가 영원히 요람에 머물 순 없다.” 치올콥스키가 생존한 그 시대에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이란 단어 자체도 낯설고 인류가 과연 우주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실현 불가능한 비관적인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인류는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갈 수밖에 없고 인류의 미래는 우주에 달려 있다”라고 예측했다.

  2. 반물질

    전자·양성자·중성자로 이루어지는 물질에 대하여, 그 반대 입자인 양전자·반양성자·반중성자로 이루어지는 물질. 양전자단층촬영장치(PET)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